유진 피터슨, "거룩한 십대, 거룩한 십대" 요약 1 / 교사 나눔 자료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
글쓴이: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장로교회에서 30년 간 목회자로 섬겼고, 현재 리전트 대학 석좌 교수로 저술활동 전념. 대표작 "메시지 성경", "이 책을 먹으라", "다윗" 등등.
간략한 책 소개: 세 아이의 아버지, 한 목회자의 입장에서 청소년기에 대해 말합니다.
부모에게 자녀의 청소년기는 “선물”이라는 관점에서 좋은 통찰을 소개해줍니다.
중고등부(십대)가 어떤 시기인지, 그 특징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소개해줍니다.
목차: ① 청소년기는 선물입니다._퇴화와 성장의 갈림길에서
② “내 마음대로 옷 좀 입게 내버려 두세요”_선택과 결정에 대하여
③ “나 교회 안 갈래요”_거부와 저항에 대하여
④ “강요하지 마세요”_권위와 순종에 대하여
⑤ “어른들은 이해 못해요”_세대 차이에 대하여
⑥ “왜 날 항상 못 믿으시는 거예요”_신뢰와 불신에 대하여
⑦ “날 사랑한다면, 허락해 주셨을 거예요”_옛 사랑과 새 사랑에 대하여
⑧ “엄마 아빤 위선자예요”_ 도덕성의 눈뜸 앞에서
⑨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_목표의 혼란에 대하여
⑩ “오늘 밤에 차 써도 돼요?”_독립-홀로서기의 요구에 대하여
⑪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_청소년기의 영성에 대하여
⑫ “나를 절대 용서 안 하실 거예요”_위기의 사건에 대한 반응
머리말 요약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110:3_원제: Like Dew Your Youth)라는 말씀이 저술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슬 같은” 청소년기는 부모의 삶을 잠깐 차지했다가 금방 지나가버립니다. 이슬 같은 시기이기 때문에 자녀들의 청소년기를 무시, 회피해도 부모의 외양(지위, 권위)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기의 자녀는 때때로 부모를 무척 성가시게 하나, 분명히 존재합니다. 마치 이슬처럼 일시적으로 말입니다.
① 청소년기는 선물입니다._퇴화와 성장의 갈림길에서 요약, 서론
“청소년기 자녀라는 다소 거북한 포장에 싸인 선물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장하라고 도전하시고, 우리 사랑을 시험하시며, 우리 소망을 단련시키시고, 우리 믿음을 깊은 구렁에 빠지기 직전까지 밀어붙이십니다.”
자녀에게 청소년기 징후가 나타나는 순간, 그 가정은 더 이상 평범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정돈된 모습을 유지하는 가정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칠고, 유별납니다. 동시에 청소년기 자녀는 부모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이라는 관점이 바로 이 책의 주제입니다. 청소년기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어린 아이를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중년 부모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시키시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청소년기는 해결해야할 ‘문제’로 축소해선 안 되고, 중년의 부모 역시 성장을 위해 함께해야 할 경험입니다.
성인기 초기 부모는 갓 태어난 아기 앞에서 경이에 휩싸입니다. 성인 초기는 교육과 훈련도 어느 정도 받았고, 생계를 책임지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탄생 앞에서 자신이 연약한 피조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리고 중년기가 되었을 때, 청소년기 자녀가 ‘탄생’합니다. 침체되고, 우울해지고, 젊음의 생기가 말라가는 시기, 실패와 실망이 점점 쌓이고, 성공한 경우에도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하나님의 선물이 찾아옵니다.
청소년기 자녀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유난히 생생해서, 부모들이 그 과정에 휘말리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십대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라면 누구든지, 성장할 수 있는 거대한 실험실-거룩해지는 원재료-성숙시키는 은혜의 수단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 성장, 거룩, 성숙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엡 4:13)”입니다. 부모들은 믿음으로 기꺼이 받을 수도 있고, 고집스럽게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중년 그리스도인이 빠지는 착각은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이미 다 성장했으며, 교육과정도 마치고, 직업을 마침으로써 더 이상 성장이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성장은 중년의 어른에게 부자연스럽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제자도에 치명적입니다. 때로 자신은 어른이고, 완성되었기 때문에 청소년 자녀의 성장만 통솔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형편없음 때문에 절망에 굴복하여 자녀를 도울 뿐 자신의 성장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장의 기회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의 최선의 모습은 (옳은 일, 옳은 말을 할 때가 아니라), 믿음으로 성장의 과정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따라 자녀들과의 관계를 잘 이끌어 가는 부모들을 관찰해보면,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들이 진지하고 정직하며 즐겁게 그리스도의 길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들을 뿐 아니라, 그 말에 담긴 의도, 이면의 태도를 듣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무엇을 정말 중시하며, 무엇을 정말 경시하는 지 알게 됩니다.
옛날 도제 교육을 생각하면 됩니다. 도제는 스승과 가까이 지내면서 스승의 최고의 모습, 최악의 모습을 다 봅니다. 도제 앞에 스승은 약점을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승인 장인은 교육전문가도 아니고,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일만큼은 능숙하게 하면 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심리학 전문가, 교육 전문가일 필요 없지만, 자기 일 즉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일만큼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따라서 부모의 임무는 청소년의 문제에 좋은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즉 어른이 된다는 것은 충만하게, 생생하게 그리스도인답게 되는 것임을 삶으로 보여주는 가운데, 자신의 약점을 숨김없이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그 과정 가운데 청소년 자녀는 의논거리(논란)을 매일 제공해주며, 그것은 부모의 유치함, 변덕스러움, 특권만 요구하는 모습을 폭로합니다. 그 의논거리는 부모의 성장을 안내하는 지도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