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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도화 『한국교회 예배사』 요약
연구의 기본 질문들
- 예배의 형성과정에 대한 것이다. 각 시대의 예배는 언제, 어디에서, 그리고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가?
- 예배의 발전과정에 대한 것이다. 각 시대의 예배는 어떤 내용, 구조, 형식으로 어떤 특징과 경향을 나타내며 진행되었는가?
- 예배의 영향에 관한 것이다. 각 시대의 예배는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예배 전통을 형성하였는가?
연구 방법 : 각 교단 지역 교회들을 위해 제시한 표준 주일예배를 비교하며 분석하는 방법으로 연구한다.
주일예배 형성(1879-1900)
1. 한국인 예배 공동체
한국인 첫 예배 공동체: 한국인 예배 공동체가 만주와 일본에 형성되었다. 맥킨 타이어와 로스(스코틀랜드 선교사)는 만주에 한국과 만주 사이에 위치한 곳에서 선교사를 돕던 한국인 청년 6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청년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문물교류를 하던 자들이었으나 선교사를 만난 후에는 선교 사역을 돕는 권서인 또는 매서인이 되었다. 1878년 신약 일부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번역된 성경을 한국 북부지방에 반포하면서 한국인 예배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일본에서는 개화파 지식인들-이수정 이 복음을 받고 한인 예배 공동체를 형성한다)
한국인 예배공동체의 예배: 한국인 예배 공동체가 토착화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선교사들(로스)의 네비우스 선교정책(자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한국인이 직접 예배를 인도하게끔 하였다. 한국인이 인도한 예배의 특징 3가지이다. 첫째, 간단하게 구성되어 진행되었다. 둘째, 성경공부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주제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설교는 어려웠다. 셋째, 지역 중심의 연합예배를 가능하게 했다. 연합예배에서 선교사나 조사들의 도움을 받아 예배의 내용을 익혔다.
초기 한국교회의 예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예배 형태는 구도자를 위한 것이었다. 만주 예배 공동체의 예배는 평일 오후에 전도설교, 저녁에 성경교육, 주일에는 찬송과 기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낮 시간에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복음전도로 회심자를 얻고, 회심자들을 사경회 형식의 저녁 예배를 통해 교회의 구성원으로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록자들을 부흥회 형식(찬송과 기도 중심)의 주일예배를 통해서 확실한 영적 구원을 체험하도록 도왔다.
2. 선교와 예배의 연결
성경연구반: 선교사가 이미 피선교지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들어온 특수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예배보다 성경공부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성경공부반은 약 1년 정도 후에 주일예배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경연구반은 세례 후보자를 교육할 뿐 아니라 예배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첫 단계였다.
세례식: 그리고 선교 초기에 세례를 강조하는 것도 한국 교회의 특징이었다. 성경연구반이 복음을 전하는 첫 관문이었다면 세례는 교회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복음전도, 성경공부가 세례예식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열매를 거두는 것이었다. 선교초기에 예배를 주기적으로 참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탄압). 그러나 신앙을 결단하고 용기를 가지고 세례를 받은 자들은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했다. 세례 받은 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예배 공동체가 형성되고 교회가 시작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3. 주일 예배
사랑방예배: 한국 선교 초기에 선교사들이 사람들을 직접 접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랑방이 복음전파와 예배 공동체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인의 대화 장소였던 사랑방은 처음에는 종교적인 대화를 나누는 복음 전파의 장소였고, 점차 성경공부와 기도를 나누는 예배장소로 사용되었다. 처음 사랑방 주일예배는 선교사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한 예배로 영어로 진행되었다(공식적으로 한국에서 드린 외국인 첫 예배 1885년, 1887년까지 한국인 예배는 어려웠다.). 선교사 중심으로 영어로 진행되던 주일 예배가 한국인들을 위하여 한국어로 진행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선교사들이 한국어 구사능력이 갖추어지자 한국인 예배로 확대되었다. 1890년 후반부터 사랑방에서 모이던 예배공동체들은 점차 자체 예배당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배당이 생기기 전에는 연합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당이 생기자 각 교단들은 각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당 예배(장로교): 이 시기 장로교 예배 내용은 새문안교회(정동교회) 70년사, 마펫의 위원입교인규도, 연합부활주일 예배순서지로 추측할 수 있다. 정동교회는 주일 예배를 성경공부(9:45-10:30) 후에 드렸다. 주일 예배는(10:30-11:30)는 찬송, 기도, 성경봉독, 전도설교, 기도, 봉헌, 찬송 등의 순서로 매우 간단한 형식이었다(자료: 새문안교회 70년사).
마펫이 소개한 예배 순서는 매우 간단한데(묵도나 기원 같은 시작 부분과 축도나 주기도, 시편교독, 광고가 없다. 찬송으로 시작하여 찬송으로 끝이 난다.), 가능한 빨리 예배의 주도권을 한국인에게 넘겨주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를 목회자가 아니라 장로나 평신도가 인도하게 하는 것도 토착민을 위해 교회 안에 정착시켰다. 마펫의 간단한 예배 순서는 장로교회의 비예전적 예배순서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연합부활주일예배의 예배 순서에는 회중이 담당하는 기도 대신 부활주일을 고려한 교리문답이 포함되어 있다. 이 교리문답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간단한 질문과 대답들로 구성된 것으로 보아, 학습이나 세례 예식을 진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활주일예배를 드리는 전체 회중을 위한 성시교독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감리교는 생략]
토착화된 예배의식: 초기 예배에서 토착화된 요소는 예배당 건축 양식에서부터 나타난다. 의자 없이 한국식의 마루로 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기도할 때는 모두 꿇어앉아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하는 형식을 취했다. 당시 풍속에 따라 커튼으로 남녀를 분리했다. 학슨 세례를 받을 때까지 적어도 1년 동안 신앙 훈련을 받도록 했다. 세례 예식은 간단한 순서로 진행되었고(찬송, 서약, 기도, 헌금, 세례), 세례식 후에 곧 성찬을 했다. 성찬식도 간단했으며, 분명하지 않으나 성찬식 때 사용된 떡은 시루떡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4. 예배의 경향
전통 종교들과의 만남: 한국 교회의 예배 의식 속에 유교, 무교, 불교의 영향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유교의 부성적 영성으로 성경과 설교를 강조하는 교훈적 예배의 경향을 나타냈다. 무교 의식의 모성적 영성이 감정에 호소하는 부흥회적 예배의 경향을 나타냈다. 불교의 중성적 영성이 관조와 경건을 강조하는 기도 중심의 예배 경향을 나타냈다.
선교사들의 예배 경험: 한국에 들어온 미국 교파 교회의 선교사들의 배경은 ‘부흥회적인 형태, 감리교적 생태’를 지닌 ‘복음주의자들’이라고 지적하였다. 미국 부흥운동을 통해 형성된 복음주의와 경건주의의 이중적 신앙 형태가 선교사들을 통해 생활과 체험 중심의 부흥회 형식의 예배 형식과 내용을 한국교회에 심겨졌다. 가능한 빨리 회심자를 얻으려는 선교사들의 열정에 의해 비예전적인 형식, 즉 선교지향적인 예배 형식을 취하기 시작했다(실용주의적인 예배 구조, 자유로운 예배진행).
실용적인 예배 구조는 1) 준비단계의 찬송 2) 회개와 회심을 요구하는 설교 3)새로운 회심자들을 얻기 위한 초청 이었다. 그리고 교회 법규나 예식서에 의해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고정된 형태의 표준예배를 배척하였다. 예배용 찬송보다는 예배자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간단하고 부르기 쉬운 찬송들이 자유롭게 반복되었다. 인쇄화된 기도의 내용을 읽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발적인 기도를 장려하였다. 설교도 부흥회식 열정적인 설교로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했다. 이런 예배 경향은 교회 성장을 향한 열정에 치우치면서 교단이 제공하는 표준예식을 지역 교회가 마치 입기에는 맞지 않고 입어도 불편한 기성복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주일예배의 전통(1901-1930)
- 1900년대의 예배
선교사의 신학적 배경(복음전파, 교회형성-청교도적 전통)과 네비우스 선교 정책(전도설교, 세례의식 강조)에 의해서 선교지향적 예배 강화되었다. 교회가 급성장하게 되었지만, 그 요인은 국가로부터 보호받기 힘들어진(을사조약) 서민들이 보호받기 위해 교회로 몰려왔으며, 지식계층이 민족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교회로 온 것이었다. 교회는 성장했지만, 내부적인 변화가 요구되었다. 교회를 정화하고 기독교인의 윤리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한 요구였다. 이 요구에 응답하며 일어난 회개 및 신앙 운동이 1907년 대부흥운동으로 발전했다.
대부흥운동: 대부흥운동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한 한국교회의 예배 전통의 핵심은 성경연구와 기도에 대한 열정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사경회와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한국적 예배의 중요한 요소들로 나타났다.
대부흥은 1903년 원산 비장에서 선교하던 선교사들끼리의 성경공부가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성경공부 강사였던 하디 선교사들이 기도에 대한 가르침 중에 자신의 교만 때문에 선교 사역이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이를 선교사와 한국인 회중 앞에서 고백하며 회개하였고, 회중에게도 회개와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간헐적인 부흥이 이어지면서, 1907년 평양에서 사경회를 중심으로 대부흥운동의 불길이 점화되었다. 대부흥을 계기로 성경연구에 대한 열정을 일으켜 한국인들이 조직적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성경반을 생산하였다. 그리고 대중 신앙 운동의 전형적인 형태인 부흥사경회(새벽기도, 오전 성경공부, 오후 방문전도, 저녁 간증과 말씀 중심의 전도집회)가 한국교회의 특징이 되었다.
대부흥운동의 기반을 형성한 전통가운데 중요한 것은 길선주에 의해 한국교회 공예배의 하나로 정착된 새벽기도운동이었다. 새벽기도는 대부흥 이전에도 있었지만, 대부흥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길선주는 기독교에 입교하기 전 도교와 선불교에서 새벽기도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이 경험으로부터 한국교회에 새벽기도회를 도입하였다. 대부흥으로 고양된 새벽기도회는 통성기도와 철야기도, 산상기도로 연결되면서 한국교회의 특징적 예배가 되었다(토착화). 이러한 예배토착화는 7명 한국인이 목사 안수를 받음으로 가속화되었다.
한국적 예배의 특징: 한국교회는 사경회와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성경공부와 기도생활을 중요한 경건의 목록으로 강조하여 한국적 복음주의의 두 축을 형성하였다. 성경공부에 대한 열정은 교육적인 설교 중심의 예배를 낳았다. 그러나 교육적 설교중심의 예배전통은 예배를 단순하게 진행하여 예전적 요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대부흥의 열정적인 기도는 문장에 매이지 않는 자유형식의 기도, 통성기도 등의 기도 형식이 자리 잡게 하였다. 기도에 대한 열정은 즉흥적인 기도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게 했다. 예배를 주정주의적으로 진행하게 만들었다. 예배 속에 하나님의 역사보다 예배자의 감정적 느낌, 감동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대부흥의 영향으로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예배를 낳았다. 성령의 역사와 임재가 예배를 계획하고 평가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이후에 치유, 기적, 기복, 신비 등을 체험하려는 부흥회식 예배 전통을 낳았다.
2. 1910년대의 예배
대부흥운동은 한국인에 의한 교회조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음에도, 한국교회 예배는 계속 선교사 주도하에 있었다. 결국 1910년대 한국교회 주일 예배는 평신도를 위해 마련되었던 초기의 간단한 초교파적 예배순서로부터 보다 교파적인 특성을 지닌 길고 다양한 예배순서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장로교의 예배: 선교사들은 1907년 한국인 목사를 배출하면서 간단한 형식보다 교단적인 특색을 나타내는 예배를 발전시키길 원했다. 장로교 안에서 일어난 예배갱신의 시도였다. 대표적인 사람이 클락(Charles Allen Clark; 곽안련, 미북장로교 소속)이었다. 그는 1908년부터 36년간 평양신학교의 실천신학 교수였다. 장로교 예배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정치문답조례(1917)과, 목사치법(1919)라는 예배안내서를 번역 소개했다. 선교초기에 한국장로교는 전도설교를 중심으로 구성된 노방전도형의 간단한 예배로부터 시작하여, 마펫의 예배형식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1919년에 이르러 클락이 소개한 예배순서에 의해 장로교의 예배형식에 변화가 일어난다.
특징은 첫째, 클락은 칼빈이 스트락스벅예전과 제네바예전에서 했던 것처럼 죄의 고백 순서를 예배의 앞부분에 놓았다(한국에 최초로 소개). 둘째, 예배에서 예전적인 순서는 연속적인 성경봉독Lectio continua이다. 셋째, 사도신경과 함께 십계명이 신앙고백을 위한 선택 요소로 포함되었다. 넷째, 클락은 예전적인 전통을 따라 목회전반을 위한 공중기도를 평신도가 아닌 목사가 인도하도록 하였다. 다섯째. 전체적으로 찬송이 샌드위치 역할을 하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다른 순서들을 연결하고 있다. 여섯째, 목사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권위로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사자로서 설교를 하지만 동시에 목회기도를 할 때는 회중을 대표하는 균형 있는 사역을 담당한다. 일곱째, 개혁교회의 예배 전통의 하나인 설교자가 하는 설교를 생략하였다. 이와 같은 예배순서는 미국북장로교 예배모범으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클락이 소개한 예배 순서가 실제적으로 지역장로교회들의 주일예배에 널리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칼빈의 예전을 배경으로 한 클락의 예배 순서는 선교 초기 토착화된 청교도형 간단한 예배형식보다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펫의 예배 순서에 따라 주일 예배를 드렸다. 클락의 예배갱신운동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클락는 세밀한 지침사항도 제시하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설교시간은 30분이 적절하다고 하였고, 긴 설교가 한국교회 예배에 자주 일어나는 실수의 하나라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습관과 같은 긴 설교를 ‘하나의 죄를 저지르는 행위’로 보았다. 예배 전 예배당 청결과 예배 중 소음제거를 요구하였다. 또한 예배당에 들어오면 먼저 묵도를 해야 했다. 주일 저녁예배는 교인들이 피곤할 것을 감안하여 설교는 길게 하지 않고, 찬송을 부르는 찬양 예배를 제안한다. 또한 예배 음악의 토착화를 권장하였다. 서양악기들을 소개하면서 거문고와 같은 한국악기도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한국 전통 리듬 찬송들을 사용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금지한 악기는 징과 드럼같이 불협화음을 일으킨다고 생각한 타악기였다.
[감리교, 성결교 내용 생략]
3. 1920년대의 예배
1920년대 한국교회는 일제 치하에서 친일 아니면 반일이라는 생존양태의 상황 속에서 고민한다. 3.1운동이 성과 없이 끝나자, 그 여파로 인해 한국 교회 신앙은 의식화운동, 교회 내적 신앙을 강조하는 경향,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시련 속에서도 25% 급성장을 이루었다. 이 때 공헌한 것이 김익두의 이적치병의 부흥회였다. 그러나 부흥운동 현상은 한국교회에 주정주의에 바탕을 둔 부흥회식 예배를 강하게 심어놓으며 한국교회의 예배를 더욱 비예전적인 전통으로 끌고 갔다.
장로교 예배: 1922년에 발행된 조선 예수교 장로회 헌법은 한국교회 예배가 비예전적 방향으로 가게 하였다. 이 헌법의 예배모범은 미남장로교회의 예배모범을 번역한 것인데, 남장로교의 예배모범은 비예전적 성격이 강했다. 이 예배모범은 약간의 개정을 거쳐 193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도 계속되었다.
이 예배 모범은 주일예배의 순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없이, 16장으로 나누어 인도자와 참석자들을 위한 설명을 싣고 있다.
주일예배의 토착(1931-1960)
- 1930년대의 예배
예배의 배경은 1932년 전국 교회를 석권하듯 부흥회와 신비적 경건으로 새로운 신앙의 분위기를 조성하던 이용도의 신비주의였다. 그러나 김교신 중심의 무교회주의자(주지주의자)는 부흥회식 예배에 대하여 비판했다. 1930년대는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예배를 중심으로 예배에 대한 규범과 설명을 강조하던 ‘예배모범’의 시대로부터 오늘날 주보에 게재되는 것과 같은 간소화 ‘예배순서’의 시대로 나가는 시작 단계이다.
주된 특징으로 첫째, 주악이나 성악으로 시작하던 미국교회형의 주일예배 순서로부터 점차 묵도를 첫 순서로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묵도는 한국적 예배의 특징이 되었다. 둘째, 기도순서가 다양해지면서 예배의 앞부분에서 공동기도의 성격을 띠던 기도가 평신도가 담당하는 대표기도로 변하였다. 셋째, 설교중심의 예배가 정착되면서 헌금과 광고가 설교 앞부분에 위치하였다.
장로교 예배: 1934년 헌법의 예배모범에도 주일예배의 순서는 소개되지 않는다. 1930년대 주일예배를 소개하는 자료들은 1932년 새문안교회의 주일예배순서(마펫 계열)와 1934년 솔토(T. S. Soltau; 소열도)에 의해 소개된 주일 예배 순서와 예배첩경이 있다. 솔토가 소개한 예배순서는 클락의 예배순서와 같이 예전적인 형식을 지니고 있었다. 예배첩경은 1977년의 예식서가 출판될 때까지는 장로교의 주일 예배 순서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예배첩경에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배우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 마땅한 경배를 드리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예배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몸과 옷차림, 경건한 마음, 예배 진행 준비였다. 새문안교회 주일 예배와 비교했을 때 다소 길었다.
2. 1940-50년대의 예배
1930년대 말부터 신사참배는 예배의 자유를 억압했다. 신사참배 문제는 해방직후에도 분열의 아픔을 일으켰다. 장로교 1959년 헌법에 교회의 예배 의식과 성경적 근거를 소개하지만 예배 순서에 대한 내용은 타나나지 않는다.
주일예배의 굴절(1961-1990)
1. 1960년대의 예배
1950년부터 교회의 분열을 경험했다. 각 교단은 개교회주의 경향을 띠면서 교세확장을 위한 경쟁을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한국 개신교 안에 예배 갱신론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장로교의 예배: 1961년 총회 교육부가 처음으로 예식서를 만들었으나 자료나 내용 면에서 빈약하였다. 첫 예식서에는 표준 주일예배순서가 제시되지 않았다. 이미 지역교회들은 대표적 예배형식을 따랐다. 예배의 특징은 전주로 시작하여 후주로 끝났다. 전주 후에는 인도자의 예배의 말씀이 따른다. 전주와 후주는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역할을 했다. 그리고 예배의 말씀과 축도는 분명한 구두로 예배의 시작과 마지막을 선언하는 역할이었다. 성가대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성경봉독과 설교 사이에 성가대의 찬양이 들어가고 설교 후에 설교자의 기도가 따르는 것이 장로교 예배의 특징이다.
2. 1970년대의 예배
1970년대 군사독재에 의한 억압이 한창일 때 많은 교회들이 은사 체험이나 축복을 강조하는 부흥회의 영향을 받아 주정주의적 예배에 치우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국가의 고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더욱 교회성장에 집중하였다. 예배를 사람들이 모이는 대형집회로 여겼다. “한국교회에는 집회가 있을 뿐 예배는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예전회복을 향한 예배 갱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장로교는 1970년대 들어서 표준 주일 예배를 제시하면서 변화를 시도하였지만, 지역교회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새형식에 부담을 느낀 목사들이 간단한 형식을 선택하였다. 본격적인 갱신은 1990년대에 시작되었다.
장로교의 예배: 1977년 표준 주일예배순서는 1934년 솔토의 예배순서 이후에 예식서를 통하여 처음 제시된 것이다. 네 가지 유형의 예배순서를 제시함으로 예배 갱신을 시도하였다. 가장 간단한 (1)형식도 이전 예배순서(새문안교회, 솔토)에 비교하여 보았을 때, 더 복잡한 형식이었다. 각 형식에서 공통적으로 위치한 예배 순서는 주악, 예배의 말씀, 찬소(경배를 위한), 성경봉독(또는 구약과 신약성서), 성가대의 찬양, 말씀(설교), 폐회찬송, 축도 그리고 폐회 등 9가지이다. 이 외 것들은 각 유형의 특징에 따라 생략된다. 두드러진 특징은 음악의 변화이다. 피아노와 오르간과 같은 예배용 악기를 사용하고 성가대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묵도-축도 구조가 성가대의 송영-후주로 대치되었다.
3. 1980년대의 예배
19070년에 나타난 예배의 다양화 현상은 1980년대 확대되었다. 교단에 소속된 교회들이 통일된 예배 순서를 따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각 교단이 제시한 표준 주일 예배는 교회 성장을 위한 예배순서에 밀려 지역교회에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지역 교회의 필요에 따라 정해진 예배는 잘못된 예배 이해를 증폭시켰다. 즉 교회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전락되거나 부흥집회의 현장으로 변했다. 실제로 1980년대에 지역교회의 주보에 나타난 예배의 유형은 지역교회 목회자의 취향만큼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본적인 예배의 구조까지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예배는 빈야드 운동, 경배와 찬양의 형식이었다. 지역교회별로 진행된 다양한 예배 유형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야기했다. 첫째, 무엇으로 예배를 시작할 것인가? 묵도는 생동감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순서들로 예배를 시작하기 시작하였다. 둘째, 성시교독이나 사도신경을 생략할 수 있는가? 찬송가에 수록된 교독문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했고, 젊은이들은 교독문과 사도신경을 지루하게 여겼다. 셋째, 대표기도를 생략하거나 목회기도와 공동기도 등으로 대신할 수 있는가? 대표기도는 집례자에 의해 진행되지만 한국교회는 선교초기 한국어가 서툰 선교사들이 장로들에게 맡겨서 토착화되었다. 넷째, 헌금과 광고의 바람직한 위치는 설교전인가, 후인가?
4. 예배의 경향
1970년대 급성장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성장 주요 요인들로 자주모이는 집회, 새벽기도, 구역운영을 들곤 한다. 이 모두 한국교회의 예배의 한 형태이다. 그래서 교회 성장은 예배를 통한 것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 학자들은 한국교회 예배를 열정적인 설교 중심 예배, 전도를 강조하는 예배, 헌금을 강조하는 예배라고 비판했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주보에 실은 설교문, 예배출석인원 통계 그리고 헌금 명단과 통계를 보면 잘 나타난다. 이 현상들로 분석한 한국교회 예배의 특징은 개인주의, 목적주의 그리고 물량주의이다.
첫째로, 설교 중심의 예배는 개인주의를 부추겼다. 주일예배가 하나님보다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공연 수준이었다. 목사의 설교, 장로의 대표기도, 성가대의 찬양 등으로 예배 일부가 사유화되어 예배공동체가 상실되었다. 개인주의 현상은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주의와 배타주의로 더욱 심해졌다. 회중은 설교자의 선포에 모든 예배 참여를 국한시켰다. 그리하여 회중은 설교에만 참여하면 예배는 참여한 것으로 간주하는 극단적인 현상을 낳았다. 예배를 설교 하나만으로 대신하는 예배 현상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성찬을 잊어버리게 하였다.
둘째, 전도를 강조하는 예배는 목적 지향적이었다. 성장을 위한 목회는 교회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 존재의 목적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인간 위주의 행사로 전락된 경우는 교회 행사나 가정 의례를 축하거나 기념하기 위한 ‘축하 예배’또는 ‘기념예배’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
셋째, 헌금을 강조하는 예배는 세속적이며 물량주의적이다. 지나치게 현실에서의 축복을 강조하였다.
주일예배의 갱신(1991 이후)
- 새로운 예배
20세기 후반에 세계교회의 예배갱신 바람이 불었다. 예배갱신 운동은 1963년 가톨릭의 바티칸 공의회에서 예배의 개혁을 선언함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영향 받은 미국의 주요 개신교교단들이 각각 새 예식서와 찬송가를 출판하였다. 주일 예배에 관한 개신교의 예배갱신운동은 성서적 내용에 근거하여 1) 함께 모여 2) 말씀을 듣고 3) 감사로 응답하며 4) 세상으로 파송되는 예배의 4중 구조를 회복하는 방향이었다. 한국교회 각 교단도 예배 갱신을 부르짖으며 새 예배서와 예식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1996년 성결교(기성) 새예식서, 1997년 장로교(통합) 표준 예식서, 2002년 감리교(기감) 새 예배서를 발간했다. 각 교단의 새 예배순서를 비교하고 분석하기 위해 그 교단의 예배신학, 예배의 구조, 예배의 순서를 이해해야 한다.
예배의 신학: 예배신학은 “기독교 예배란 무엇을 의미하며 예배를 왜 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개인 혹은 교회의 이해”를 말한다. 예배에 대한 신학적 기반은 예배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 교단이 주장하는 예배의 신학은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삼위일체적 예배이다. 첫째, 예배는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높이고 찬양하는 것이다. 둘째, 예배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셋째, 예배는 중보자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는 것이다. 예배 순서의 초점이 삼위 하나님의 내용을 담고 있다면 예배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예배에서 적절하게 삼위가 예배되지 못하고 균형을 잃게 되면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없다.
예배의 구조: 예배는 기본적인 구조, 즉 예배 전체의 골격으로 진행된다. 예배의 구조가 예배의 내용을 잘 전달하는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충분히 기억하고 회상하고 선포하고 재연하는 구조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배의 4중 구조는 성경에 근거하고 교회의 경험에 의해 증명된 구조이다.
예배의 순서: 예배의 신학과 구조는 타협할 수 없다. 그런데 예배의 형식은 다양성과 변화를 요구한다. 이는 계속 변하는 인간의 문화, 세대 그리고 선호도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2. 장로교의 예배
표준예식서(1997): 헌법을 통하여 예배와 예식에 관한 간단한 내용과 자료를 제시하다가 1961년 첫 번째 예식서를 발행하면서 예식서에 관심을 가졌다. 1987년 두 번째 예식서가 출판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예배갱신운동에 영향을 받아 세계의 개혁교회와 호흡을 맞추고 한국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예식서를 발간하였다.
예배의 신학과 기본구조: 예배 신학은 예배를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역사에 대한 신앙인의 응답으로 이해한다. 장로교 예배신학은 두 가지 원리를 제공한다. 첫째, 예배는 신학적 의미를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 여기서 ‘신학적 의미’는 초대교회의 예배전통과 종교개혁자들의 예배신학에 기초한 것을 말한다. 둘째, 예배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성례전과 함께 진행되는 주일예배는 기본적으로 여섯 부분으로 진행된다. 첫째,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부분이다. 둘째, 하나님 앞에 나온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부분이다. 셋째, 세례 성례전을 행하는 부분이다. 넷째,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응답을 표현하는 부분이다. 다섯째, 성찬 성례전을 행하는 부분이다. 여섯째, 예배를 통하여 받은 은총을 간직하고 세상 속으로 파송을 받아 나가는 부분이다. 성례를 하지 않을 경우 세계 교회 예배의 4중 구조와 다르지 않다.
예배의 순서: 전통적인 예배에서부터 세계교회의 예전회복을 반영하는 예배에 이르기까지 다섯 가지 유형의 주일예배순서들을 제시하였다. (1) 형식, (3)형식은 장로교 전통적인 예배 순서이다. (2), (4) 형식은 구조 보다 예전적인 유형의 분류이다. (5)형식은 장로교 본산인 스코틀랜드교회와 미국장로교가 사용하는 예배 기본 유형이다.
주일예배의 미래
- 한국교회 예배의 미래
‘초교파적인 예배 일치’로 알려진 예전회복운동이 있다. 각 교단의 예배학자들은 예배갱신의 규범을 초대교회의 증거로부터 취해야 한다고 동의함으로 하나의 에큐메니칼 환경을 만들었다.
미래를 이야기하려면 최근에 각 교단이 새로운 예식서나 예배서를 발간할 때 사용한 기본 원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 가지 원리를 사용한다. 중앙분산화, 목회적 고려, 지혜로운 문화적응이다.
첫째, 각 교단은 과거의 중앙 집중형 예배로부터 탈피하여 지역교회들을 위한 예배로 그 중심을 옮겼다. 둘째, 목회적인 면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회중의 예배 참여가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공동체를 형성하는 바른 예배를 통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셋째, 각 교단의 예배 갱신의 방향은 현대 사회 속에 있는 신학적이며 문화적인 요소들에 우선순위를 둔다.
2. 문화에 대한 도전으로써 예배
첫째, 예배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인간의 죽음을 진지하게 여겨, 예배 속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풍성한 다양성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동성연애자들까지도)을 예배에 어떻게 포함시킬 것인지 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는 예배를 통하여 자연과 창조와의 관계를 재평가할 필요를 느껴야 한다.
3. 아름다운 미술과 건축으로써 예배
건축물을 재설계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을 제사장으로 강조함과 동시에 성직자 계급적 역할을 강조하지 않는 경향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물려받은 유산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문화와 전통에 어울리는 예배 공간을 만드는 것 중요하다.
4. 제언
예배를 개혁하고 갱신하는 일에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모든 교단이 함께 준비한 통일 예배서를 가질 가능성을 기대한다. 교파 분열의 상처를 치유할 연합의 촉매역할을 감당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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