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스포 다수 포함.

 

느낌

1. 이 찝찝한 느낌은 뭘까? :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지만, 죽는다는 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찝찝한 기분을 쫓아가 얻은 결론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죽음', '시한부'를 가져와서 전개한다. 여인(사쿠라)은 죽어가지만, 남자(하루키)에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산다는 것은 주변에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 남자는 여인를 잃고 그녀가 가르쳐준 삶을 잊고 산다. 그녀가 권했던 교사는 되었지만, 여인과 친해지기 전 모습인 '죽어 있는' 삶을 산다. 사직을 결심했던 남자는 그녀와 함께 일했던 도서관을 정리를 맡게 된다. 그곳을 정리하면서 여인과 일을 회상하다가 우연히 편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내용에 따라서, 다시 그녀가 가르쳐준 삶을 산다. 편지는 그녀가 남긴 췌장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영화는 여인을 잃은 남자가 회복되는 나름 해피엔딩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찝찝했다. 왜 찝찝할까? '죽음'을 영화의 중심으로 가져왔으나, '죽음'을 해결하지 않았다. 대신 계속 살고자 하는 애착만 보여주었다. 그 애착은 '췌장 교환'이라는 상징에 담긴다. 서로가 서로가 되어줌으로 삶이 연장되는 것이다. 결국 남자는 그녀가 되어줌으로 그녀의 삶을 연장시켜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죽음'의 해결은 단지 삶의 연장일까? '죽음'이란 무엇이고, 그 극복은 무엇일까? 죽음의 완전한 극복은 본 회퍼가 말했듯이 "죽음의 죽음이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6)" 죽음을 향한 사형 선고야말로 완전한 극복이다. 죽음을 폐기하는 부활 신앙만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 

 

2.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뭐 이딴 제목이 다 있어? 하지만 상징 언어였다. 둘만 알 수 있는 상징. 초반에 사쿠라는 췌장을 먹으러 다닌다. 아픈 부위를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기 췌장을 먹으라고 한다. 이때 '췌장 먹는다' 원의미가 나온다. 누군가 자신의 내장을 먹었을 때, 그것을 통해 그 사람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다.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담긴 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사랑을 압축하는 상징 언어가 된다. 너를 존중하고, 너를 닮기를 원하고, 너가 내 일부가 되길 원하며, 끝내 너와 연합하길 바란다. 영화 결말부분에서 남자는 그녀의 췌장을 먹은 것처럼, 그녀가 가르쳐준 삶을 살며 끝난다. 전체 주제(삶에 대한 애착)과 전체 내용(두 남녀의 사랑)이 잘 버무려져 한 마디로 요약된 말인 것 같다. 좋았다.

옛날 국어 선생님이 문학의 멋은 다 보여주지 않고, 알 수 있게끔 감춰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꺅- 할 수 있는 것이 멋이라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멋진 표현이다.

 

3. 일관된 남자의 무감정과 죽음 앞에 폭발한 감정: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